출연
김지영(조선신보사 평양지국장)
최석룡(월간잡지 〈통일평론〉 편집장)
특별출연
정기열(중국 청화대학 초빙교수, 제4언론 편집인)
진행 강민화(조국평화통일협회 부회장, 대동연구소 소장)
조국통일3대원칙은 남북이 합의한 원칙
◆(질문 강민화)오늘 토론회의 주제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원칙의 현재적 의미”입니다만, 잡지 편집을 통해서 오랫동안 통일문제에 관여해 오신 최석룡 선생님은 이 조국통일3대원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최석룡 : 북에서는 이 3대원칙에 대해서 상당히 강조합니다. 그런데 남에서는 대통령이 ‘신뢰프로세스’요, ‘드레스덴선언’과 같은 것을 내놓고 어떤 때는 “통일은 대박”이라고 통일에 대해서 많이 언급합니다만 그가 조국통일3대원칙에 대해서 언급한 것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면 이 3대원칙이 북측의 주장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1972년에 북의 김일성 주석과 남의 박정희 대통령의 위임을 받아서 조선노동당의 김영주 조직지도부장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수표해서 발표된 남북공동성명에 반영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남북이 합의한 것입니다. 서로 대립하는 남북이 화해하고 좋게 지내자면 타협도 하고 양보도 해야 하는데, 그 기조가 되는 원칙을 내놓고 그것을 지키자고 당시에 약속한 것이 바로 이 3대원칙입니다.
우리 나라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주라는 것이 얼마자 중요한가고 느껴집니다. 특히 이조시기 이후는 어떤 때는 명나라 보고 절하고 또 어떤 때는 청나라 보고 절하고, 이렇게 지내왔습니다. 그러면서 내부에서는 자꾸 싸우기만 했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 들어왔을 때에도 어떤 사람들은 청나라를, 또 어떤 사람들은 러시아를, 또 어떤 사람들은 일본을 처다봤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우리 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말았습니다만, 이 같은 일들을 돌이켜 보면서 느껴지게 되는 것은 과거에 민족의 자주를 중요시하지 못했거나 자주를 지키는 힘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해방된 이후도 그렇습니다. 해방된 조선의 북쪽에는 소련군이 들어가고 남쪽에는 미군이 들어갔는데, 몇해후에 소련군이 북에서 철수했습니다. 그러니 북은 자주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남에서는 그렇게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해방된 조국땅에 분열의 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남북의 제정당, 사회단체 인사들이 1948년에 평양에 모여서 연석회의를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단독선거를 반대하고 민족자주의 힘으로 통일독립을 이룩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감하게도 이승만이라는 사람이 미국 비행기를 타고 남반부에 날아와서 권력을 쥐었습니다.또한 당시 일정기간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를 실시한 다음 통일적인 정부를 수립할데 대한 모스크바3상회의 결정을 미국이 뒤집어버리고 조선문제를 유엔에 가져갔습니다. 이리하여 우리 나라가 분단되지 않았습니까.
조선전쟁 이후도 그렇습니다. 정전이 된 다음 제네바에서 회의가 열렸는데 북측은 조선반도에서 총선거를 실시하자면서 이를 위해서 남북이 힘을 합쳐 민족대회를 열자고 제안했습니다. 한편 남측과 미국은 유엔감시하의 선거를 하자고 했습니다. 결국 유엔의 권위 운운하던 미국에 의해서 회의는 파탄되고말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민족자주라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분단된 나라가 몇개 있습니다만 우리 나라, 독일, 베트남 외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유럽의 오스트리아도 그랬습니다. 전후에 이 나라를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가 점령했는데,잘못하다가는 이 나라도 분단될번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오스트리라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도 보수파도 단결해서 민족자주를 지켰습니다. 그래서 분단이 안되었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훗날 이 오스트리아 문제를 예를 들어서 영세중립화 문제에 대해서 언급한 일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조국통일3대원칙은 남북이 합의한 원칙입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 근현대사를 돌이켜 보면 민족자주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민족대단결 문제가 역시 중요합니다. 또한 현 시점에서 이 이상의 원칙이 없습니다.
만약에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볼 기회가 있다면 그에게 물어보고싶습니다. 자주, 평화, 민족단결 외에 좋은 원칙이 있으면 내놓으시라고. 북에서는 7차당대회에서도 그렇고 정부, 정당, 단체 연석회의에서도 남측의 좋은 제안이 있으면 내놓고 함께 토의하자고 했습니다.
8월연석회의 제안의 진지성, 진정성
◆최석룡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에 북에서는 남과 해외에 공개편지를 보내고 8.15를 전후하여 평양이나 개성에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북, 남, 해외 제정당, 단체, 개별인사들의 연석회의’를 갖자고 제안했습니다. 김지영 선생님은 기조발언에서 이 8월연석회의 호소는 최고영도자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김지영 : 해마다 8.15에 즈음해서 통일행사들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90년대에는 범민족대회가 열리고 2000년의 6.15이후는 평양과 서울, 금강산 등지에서 통일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번 제안은 그런 행사들과 차원을 좀 달리 합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 제안을 보고 김정은위원장의 주도하에 자주통일국면이 이미 시작되였다고 느꼈습니다.
북측에서는 이미 북측준비위원회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남측과 해외에 공개편지를 보냈습니다. 준비위워회의 위원장, 부위원장, 위원들은 김정은위원장의 위임에 따라서 임명되였습니다. 말하자면 이 준비위원회는 최고령도자의 의향이 직접 반영된 것입니다. 이것은 8월련석회의의 진지성, 진정성을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된 것처럼 68년전인 1948년 4월에 평양에서 남북련석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때 남측에서는 김구선생을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이 평양을 방문하고 북의 공산주의자들과 허심탄회하게 론의를 했습니다. 4월련석회의에서는 분단의 위기를 막기 위한 방책이 무엇이냐가 론의의 초점이였습니다. 그러면 이번 8월련석회의는 무엇때문에 하자는것인가? 이미 분단의 력사가 있는데 이에 종지부를 찍고 통일의 프로세스를 시작하자고 하는 민족회합입니다. 이 제안의 배경입니다만, 조선이 분단된 원흉인 미국과의 최후결판을 내다보고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올해 8월에 실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이 제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북에서는 실현될 때까지 계속 호소해나갈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과 차원을 달리 하는 북측의 결심
◆이 자리에는 북에서 보낸 공개편지를 수신하신 분이 계십니다. 중국 청화대학 초빙교수이시며 〈제4언론〉 편집인이신 정기열 선생님이십니다. 특별출연으로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정기열 : 이번 북녘의 8월연석회의 제안은 조국의 통일과 관련한 이전의 제안들과 차원을 달리한다는 김지영 지국장의 주장에 저도 깊이 동의합니다. 저도 7차당대회기간 평양에 머물고 있으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사업총화보고를 들었을 때 자주통일의 프로세스가 과거와는 다른 힘으로, 과거와는 다른 전망을 갖고 대단히 구체적으로 전개되겠구나 하는 감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초청장을 받은 제가 알고 있는 경우에만도 남, 북, 해외에서, 특히 재일동포들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 평생을 통일운동에 헌신하신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아직 북측준비위원회로부터 초청장을 받지 못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북측준비위원회에 그런 모든 분들의 마음을 담아서 이미 어떤 조직에 망라되어 있고 조직의 대표성을 가지고계시는 분들만이 아니라 여러 이유로 조직과 운동의 대표성을 가지고 계시지 않은 분들 가운데도 평생을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하여 헌신하시는 분들을 추천하고싶다고 하는 제안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오늘 아침에 당장 북측준비위원회로부터 동의한다고 하는 답이 왔습니다.
제가 이런 일을 소개해 드리는 이유는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의 위대한 순간을 기필코 앞당겨오고야 말겠다고 하는 북녘동포들의 결심은 이전과 차원이 다르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8월연석회의가 두가지 측면에서 즉 민족내부 측면과 조미대결사로 대표되는 지구촌정세의 두 측면을 염두에 두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고 생각합니다.
저의 판단으로는 올해 8월연석회의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라도, 그것이 장소가 어디이건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는 배경중의 하나가 남녘동포들속에서 더 이상 박근혜 정권에 따르지 않겠다고, 이제는 스스로의 판단과 조직적 결정에 의해서 남, 북, 해외 동포들이 모이는 전 민족이 함께 하는 자리에, 80-90년대처럼 돌아와서 감옥에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참가하려는 움직임이 있지 않겠냐고 하는 생각입니다.
언론에서 보셨던 것처럼 전농이 참가를 공식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민주노총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미 남녘동포들의 조직적 움직임이 보이고, 현직 국회의원들도 개별적으로 이번 연석회의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움직임이 보인다고 합니다. 저는 어떠한 형태를 띠든 8월연석회의가, 1948년 4월이후 제2의 엑사적인 연석회의가 열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민족외적 측면에서는 우리 민족을 70년동안 분열시킨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전략이 더 이상 기능할 수 없도록 조선수소탄시대에 구도자체가 바뀐 조미대결이라는 배경이 있습니다. 북에서 제안한 연석회의에는 그저 구호나 주장 차원에서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 하는 차원이 아닌, 힘으로 미국을 강제해서 그들이 우리 민족의 대회합을 가로막을 수 없도록 하는 그런 민족외적 요인도 과거와 다른 차원에서 무르익었다고 생각합니다.
바깥 요인중 하나의 예를 올리면, 영국이 유런연합(EU)으로부터 탈퇴하겠다고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한다는 사건이 아니라, 500년 서구제국주의 연합이 근본에서 붕괴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2차세계대전 직후에 결성된 영미제국으로 불리우는 지배체제의 근본이 무너지는 것이 온 세상에 폭로된 사건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사건과 같은날 베이징에서는 푸틴 대통령의 공식방문이 있었습니다. 그때 정상회담에 대한 기록이발표되었는데, 중요한 것은 소위 말하는 북핵문제에 관해서 이전에 중국, 러시아의 국가지도자들이 했던 말이 반복되지 않고, 핵심은 우리 식으로 말하는 반제자주 전선을 확대하고 반미투쟁을 어떻게 전 지구적 차원에서 벌이게 하겠는가 하는 차원에서 두 나라가 마치 한 국가로 힘이 모아지는 형태로 역사적인 부틴·시진핑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이런 민족외적 동북아 혹은 지구촌 정세를 하나의 참고배경으로 놓고 볼 때 제7차당대회 이후 북녘동포들이 남, 북, 해외 전체 우리 민족에게 제안한 이번 8월연석회의는 과거와 다른 차원에서, 그저 희망과 바램이 아니라 어떤 실질적인 힘에 의해서 추진될 것이라고 나름대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아까 한호석 박사께서도 강조한 것인데, 평화협정 체결과 함께 진행될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 문제에서 이전과는 달리 미군철수가 전제된 평화협정 체결과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 움직임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이 제재나 압력에 흔기를 들고 굴복하는 일은 없다
◆감사합니다. 정기열 선생님이 지금 민족외적인 문제에 관해서 뜻있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만 지금의 정세를 보면 표면에 보이는 것은 북이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악마화되고 고립된 것과 같은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가장 강경한 제재라고 하는 유엔안보리 제재 2270호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북에서는 ‘화성-10’호라는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뿐만아니라 최근에도 외무성 대변인이 제재가 강화될수록 자기들 핵 억제력이 질양적으로 더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제재의 효과가 없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과연 지금의 대북제재 국면이 지속가능한지 김지영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김 : 지금의 제재국면이 언제까지 지속되겠는가 하는 문제를 논리적으로 풀자면 두가지 요인에 대해서 검토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는 조선이 제재를 견디여낼수 있는가 하는것입니다. 조선이 견디지 못하고 흰기를 들게 되면 그 시점에서 제재는 끝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습니다. 지난 3월 유엔안보리에서 사상최강의 결의안이 채택되고 발동되었습니다. 지금 백악관도 청와대도 머지 않아 제재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보고있는 모양입니다만 그들은 조선의 실정, 조선인민의 잠재력을 너무나도 모르고있습니다.
중국이 유엔안보리제재에 얼마나 성실히 림하겠는가가 관건이라고 말하는 분석가들도 많습니다만 중국이 끝까지 보조를 맞추었다고 해도 조선은 병진로선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지금 조선에서 조국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은 1990년대의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돌파한 사람들입니다. 그때 조선에 동정하고 도와주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 사람들이 몹시 단련되였습니다. 국가도 지방행정도 공장, 기업소도 가정도 개인도 자체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내부예비를 찾고 자기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방법론을 배워서 그것이 이제는 완전히 체질화되였습니다.
지난 20년동안에 조선의 경제구조는 더욱더 주체화되였습니다. 조선이 자립경제를 해왔습니다만 80년대까지 사회주의경제시장이 있다는것을 전제로 했던 경제시스템은 90년대에 끝났습니다. 미국에 의한 제포위망속에서도 제발로 걸어갈수 있는 경제, 자기 나라 경제와 기술로 돌아가는 경제로 개조되고 혁신되였습니다. 이것이 다 적대세력의 고립, 압살책동 덕분입니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주체경제의 나라입니다. 오늘 조선에는 자력자강의 경제시스템이 있습니다.
지난 고난의 행군시기에 비하면 생활이 많이 풀렸습니다. 지금은 사회주의문명국을 건설한다고 합니다만 문명한 생활을 누릴수 있을만한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로 되돌아가자고 하면 모두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그 가혹한 시련속에서 마련했던 전쟁억제력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그렇게 되면 기꺼이 제2의 고난의 행군을 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렇게 되여도 이제는자력자강의 경제시스템이 있기때문에 90년대처럼 비참한 생활은 없을것이다, 이러한 락관론에 넘쳐있는것이 지금의 조선입니다. 이것이 최고령도자의 의지이며 인민들의 생활감정에서 나오는 여론입니다.
또 하나의 요인은 미국입니다. 미국은 제재의 목적을 북의 핵포기에 두고있습니다. 이 목적이 달성되지 않는다면 제재같은것은 그만둡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과없는 제재를 계속하고있는데, 그것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는가 하는것입니다.
제재국면이 대화국면에로 바뀔 동기는 따로 있습니다.조선에 대한 제재로 미국이 화를 입게 될 경우그들은 제재를 그만둡니다. 지금 바로 그러한 상황이 조성되여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기조발언에서도 말했습니다만 조선에서 전쟁억제력의 가시화가 이미 시작했습니다.
3월에 김정은위원장이 핵공격능력의 믿음성을 보다 높이기 위하여 빠른 시일안에 핵탄두폭발시험과 핵탄두장착이 가능한 여러 종류의 탄도로케트시험발사를 단행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해당부문에 그렇게 준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지시가 집행되여서 ‘화성-10’호미싸일이 발사되였습니다. 제재국면이 지속되는한 이 지시는 취소 안됩니다. 그렇기때문에 앞으로 핵탄두로케트시험, 여러 종류의 탄두시험이 있을수 있는데 그러면 미국은 더더욱 궁지에 몰리우게 됩니다. 앞으로 시험발사가 11월에 있게 될 미국의 대통령선거 이전에 있겠는지, 아니면 그 이후에 있겠는지, 아니면 차기정부 때에 가서 그들이 대북정책을 책정하고 있을 때에 있겠는지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겠다고 한것만큼 언제든지 있을수 있습니다. 이 핵시험에 관한 지시는 최강의 승부수입니다. 이미 당대회를 앞둔 시점에서 던저졌습니다. 미국의 정치일정까지 다 내다보고 통장훈을 부른것이지요. 어차피 빠르든 늦든 미국이 조선의 핵억제력강화프로세스에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그래서 유엔안보리제재가 당장 해제 안됩니다. 그러나 그런 압박만으로써는 못견딜것입니다.
6.15-10.4선언들은 골동품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다
◆우리가 통일을 지향하는데서 조국통일3대원칙과 함께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이 중요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등장한 이후, 그들에 의해서 선언들이 부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박근
혜 정부에 의해서 선언들이 짓밟혔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가다가 두 선언이 서랍안의 골동품이 되어버리지 않겠는가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최석룡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 : 얼마전에 재미 〈민족통신〉 사이트를 보니까 한국의 어떤 인터넷언론에 실린 조중 압녹강 국경도시 단둥(丹東)에 한달간 머무르고 취해한 기자의 글이 실렸습니다. 요즘 대북제재 때문에 조중무역도 주춤해져서 양국을 잇는 다리를 트럭이 오가지 않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자가 이곳에서 24시간동안 다리를 살펴보니까, 오전에 조선에서 많은 트럭이 단둥에 들어가고 오후에는 중국쪽에서 조선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기자는 아. 이건 다리가 좁아서 서로의 트럭들이 다니는 시간을 조절하는구나, 서울에서는 트럭들이 오가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구나, 이렇게 썼습니다.
그리고 이 기자가 단둥에 있는 조선식당에도 가보고 취재했습니다. 서울에서는 이 식당들이 대북제재때문에 종업원들이 도망쳤다거나, 문을 닫게 되었다는데 실지 가보니 손님들로 곽 차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식당들에 이전에는 한국 손님들이 많이 왔는데 요즘은 중국 손님들이 많이 온다고 들었답니다.
그러니까 실상은 일본이나 서울에서 전해지는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김일성 주석이 세상을 떠나셨을 때 소위 평론가라는 사람들이 이제 북은 3년, 길어도 5년후에 무너진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돌아가셨을 때도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이 등장했을 때도 2-3년밖에 못갈 것이라고 했지만 이미 5년이 지나갔습니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과 관련해서는 최근에 한국에서도 국회의원들이‘6.15의 날’을 기념하자고 하는 움직임이 있지 않습니까.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지금 이행되지 않고 짓밟힌 상태이기 때문에 물론 분위기야 ‘6.15시대’때와 같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다 사라지거나 골동품이 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개성공단 하나만 보아도 비록 지금 폐쇄되었지만 ‘6.15시대’에 이곳에서 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북도 벌고 남도 벌고 하니 얼마나 좋은가, 앞으로 이것이 통일에 기여가 된다면 더 좋다고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꾸 거기서 번 돈이 모두 로켓발사나 핵개발에 씌였다고 하는데 여기서 번 돈을 가지고는 도저히 모자랍니다. 제트전투기가 연료 1리터로 얼마나 날아갈 것 같습니까? 보통 자동차이면 30키로정도 달립니다만, 불과 100미터입니다. 금강산관광에서 번 돈을 가지고도 도저히 모자랍니다.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6.15공동선언도 그렇고 10.4선언도 그렇고, 남과 북이 서로 화해하고 통일을 지향해 나가자, 경제교류도 하자, 문화교류도 하자고 되면 그 이상의 방도는 없습니다. 문제는 북에서는 당대회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서 김정은 체제가 갖추어지고 나아갈 길도 정해졌는데, 남의 박근혜 대통령은 안됐지만 명년에는 임기가 끝나서 물러가야 합니다. 미국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발표당시에는 남의 대기업들에서 경제효과가 막대하다고 말한 것처럼 북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있어서도 이익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학자,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꾸 복잡한 이야기만 하는데 나는 사람이 단순하기때문에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지금도 남녘동포들속에 남아있을뿐 아니라 실지로 효과를 계속 내고 있기도 하고 있는만큼 앞으로도 이것밖에 없고, 하물며 선언들을 골동품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일동포사회의 미래상을 통일조국과 연계해서 대담하게 그려야 한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 재일동포사회도 세대교체가 진행되면서 본의아니게 장기화되고 있는 통일운동을 어떻게 벌여나가겠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게 제기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기자로서 동포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은 김지영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 : 조국통일운동은 일본에서도 사상과 주의주장 같은것을 다 초월해서 하나가 될 수 있는 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이 흐루고 세대가 바뀔수록 통일의식이 희박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저는 오히려 세대교체가 촉진되고있는속에서 우리 동포들이 민족의 넋을 지니고 민족적뉴대의 따뜻함을 간직해나가기 위해서는 통일에 대한 관심, 크고 작은 노력들을 자기 생활의 일부로 하는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6.15시대에 제가 일본보다 평양에 더 오래 머물었습니다. 북남행사장들에도 나가보았습니다. 그런 마당에서 평양태생과 서울생이 서로 만나면 다 어울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 우리같은 재일동포들이 특별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례컨대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상봉을 취재하는데 총련기자는 북측과 함께 행동하기때문에 사전에 북측의 가족들을 먼저 취재합니다. 그래서 평양이나 서울, 금강산 행사장들에서 눈물의 상봉마당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눈물의 상봉을 하고 마음이 좀 안착되면 총련기자들을 찾습니다.왜냐하면 남측의 가족들이 북측의 가족들에 대해서 궁금해하는것들, 혹은 북측의 가족들이 남측의 가족들에 대해서 알고싶어하는것이 있는데, 그런 때에 총련기자들이 가운데서 설명해줄것을 그들이 요청합니다. 북측가족들의 립장에서 총련기자는 ‘자본주의를 아는 우리측사람들’입니다. 또 남측가족들은 로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 기자라고 하면 말도 걸기 힘들어하지만 총련기자는 자본주의에 살면서도 북에 대해서 설명할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역할은 그저 기자역할이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6.15시대에 우리 학교 학생들이 서울에 가서 공연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남녘동포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동했습니다. 민족의 얼을 지켜나가는 재일동포 3세, 4세, 5세들의 모습에 감동한것입니다. 동시에 그러한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서 가까이에 있는 자식보다 멀리 떨어저 사는 해외동포자녀들에 대해서 관심을 돌리고 혜택을 베풀어주는 북의 령도자의 업적을 알게 됩니다.
남에 보수정권이 등장해서 8년입니다만 이제는 북과 남의 교류가 완전히 차단되여있습니다. 그동안 남녘에서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정부를 떠받드는 언론매체들이 반북선전을 대대적으로 해왔고 지금도 하고있습니다.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나쁜 감정이나 인식들이 확대재생산되여온 8년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2의 6.15시대는 반드시 열립니다. 그때 재일동포들은 제1기 6.15시대 때보다 더 큰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제2의 6.15시대는 제1기 6.15시대의 원상회복이 아닙니다. 련방련합에 의한 통일을 상정하는 단계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활동령역이 평양이나 서울, 금강산 등의 행사장만이 아니게 됩니다. 그것이 박근혜정권시기에 실현 안될수도 있지만 어쨌든 정치, 경제, 문화, 체육 등 모든 령역에서 교류협력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동포들의 특별한 역할이 요구되게 됩니다.그렇게 되였을 때 재일동포의 존재감을 과시할수 있는 4세, 5세가 있겠는가? 그것은 결국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국통일에 어떤 자세로 림하겠는가, 일본에서 통일운동을 어떻게 벌려나가겠는가, 그리고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통일조국의 표상을 어떻게 안겨주겠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것입니다. 아직 제2의 6.15시대 막이 오르지 않았지만 때가 오기를 기다리지말고 지금부터 동포사회의 미래상을 통일조국과 련계해서 대담하게 그려야 합니다. 그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겠는가, 할수 있는 일부터 착수해나가야 한다, 그런 자세와 노력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결속
16년전의 7월 4일, 이날도 도쿄꾜에서 통일토론회가 열리고 내가 처음으로 진행역을 맡아보았습니다. 그날 700명을 수용가능한 방이 꽉 틀엊차고 장내가 떠나갈듯한 박수소리가 자주 터져나왔습니다. 왜 그랬는가 하면 그때가 6.15공동선언발표 직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정세는 그때와 정반대되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그런 속에서 오늘 토론회가 열렸습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번처럼 힘들어본 일이 없었습니다. 듣자니 남측의 당국은 우리가 오늘 토론회를 갖는다는 것을 벌써 알고 일본에 가면 여기에 참가해서도 안되고 발언을 하는 것은 더욱이 안된다고 압력을 넣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 토론회가 보시는 것처럼 매우 진지하고 열띤 분위기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동포들의 통일열기는 결코 식지 않았다는것을 여러분들과 함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연자 선생님들, 협찬자이신 기타가와 히로가즈 선생님, 가토 마사키 선생님께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토론을 진지하게 경청해주신 동포 여러분께 마음속으로부터 감사를 드립니다.
7.4공동성명의 골짜인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에 대해서 남에서도 북에서도 조국통일의 3대원칙이라고 말합니다.
원칙이란 무엇일까요? 남측 사전에서는 “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이라고 풀이되어 있으며, 북측 사전에서는 “일정한 행동, 리론, 사업 같은데서 일관하게 지켜야 할 기준으로 되는 기본적이며 본질적인것”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약간의 내용상 차이는 있지만 “일관하게 지켜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데서는 공통되여 있습니다.그러니까 세월이 흐르고 환경이 변해도 원칙만은 변해서는 안되고 일관하게 지켜져야 하는 것이지요.
일제시기 상해임시정부에서 백범 김구의 비서로 활동했던 장준하는 7.4공동성명이 발표되었을 때 “7.4남북성명은 우리 민족의 거울이다. 이 놈을 우리 민족의 현실 앞에 걸어 놓고 있으면 조만간에 진짜와 가짜가 갈라질 것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조국통일3대원칙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의 말대로 공동성명은 오늘까지 진짜, 다시 말해서 통일할 마음이 있는사람들과 가짜, 다시 말해서 통일할 마음이 없는 사람들을 가르는 거울이 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조국통일3대원칙은 민족통일운동의 근본초석이라고 불리우게 되었으며, 20세기를 마무리짓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원칙에 기초해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세상에 탄생했습니다.
사실 6.15공동선언의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간다는 1항에는 자주의 원칙과 민족대단결의 원칙이 구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북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과 남의 연합제안 사이에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그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간다고 하는 2항에는 평화통일의 원칙이 구현되지 않았습니까.
하여 조국통일3대원칙은 6.15공동선언, 10.4선언과 함께 민족공동의 통일대강으로확고히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떠나서 우리의 통일운동은 생각할 수 없고 오늘 통일을 둘러싼 엄혹한 정세를 타개할 길도 다른데서찾을 수 없습니다. 토론회에서도 이 점이 확인되었다고 봅니다.
오늘 토론회가 통일의 주인들인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지금의 위기상황을 타개하고 통일을 지향해 나가는데 다소나마 기여가 되었다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