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준 기자
표현의 자유와 국가보안법, 전시회 개최
진행 단계부터 우여곡절, "국보법 세상"
검열로 전시 못하자 빈 공간으로 남겨둬
"21대 국회에서도 국보법 폐지 가능"
표현의 자유를 위한 국회 전시회가 개최됐다. 하지만 국회 측의 검열로 애초 준비했던 작품이 걸리지 못하거나, 빈 공간으로 남겨놓는 촌극이 벌어졌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전시회가 이렇게 된 줄 몰랐다”며 “사무실에 쫓아가서라도 제대로 되도록 해야 했는데 송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7일 국회에서는 <바람, 불다. - 표현의 자유와 국가보안법> 국회 전시회 및 간담회가 개최됐다. 전시회를 주관한 ‘국가보안법7조부터폐지운동본부’는 “1948년 제정된 국가보안법 제7조로 인해 지금까지 전 국민의 생각과 말을 검열당했다”며 “세계인권의 날을 앞두고 전시회를 개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교육부가 실시하는 통일교육주간을 맞아 서울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독도가 표시된 한반도 뱃지를 나눠준 일이 있었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교사의 행위를 간첩 활동으로 몰아세워 교사는 결국 담임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 뱃지는 1990년 노태우 정부에서 제정한 한반도기였다.
국가보안법7조부터폐지운동시민연대는 국보법 제7조(고무·찬양)로 “평화통일교육이 왜곡되고 남북 현안에 관한 토론이 가로막혀 민주시민교육까지 위협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진행 단계에서부터 우여곡절···"국보법 세상 다시 한 번 실감"
당일 전시회는 진행 단계부터 순탄치 않았다. 북한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압수당했던 신학철 화백의 ‘모내기’는 전시가 제한돼 빈 공간으로 남겨뒀고, 간디고등학교 최보경 교사의 제자들이 만든 영상은 소개되지도 못했다.
2부 사회를 맡은 임지연 교수는 “준비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며 “전시회를 기획하고 실행까지 함께했지만, 사실 성공적으로 열릴지는 오늘 아침까지도 불분명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전시회를 준비하는 그 과정 자체에서 우리가 국가보안법과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며 “국가보안법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진보당은 국회가 국가보안법 전시회마저 검열을 통해 난도질했다고 규탄했다. 홍성규 대변인은 ‘국가보안법은 세계적으로도 지탄받아온 대표적인 악법’이라 강조하며 ‘지금 당장 전면폐지해도 모자랄 판에, 국회사무처는 거꾸로 이 악법에 단단히 포박되어 전시회마저 갈갈이 난도질했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아울러 ‘국가보안법 존치는 21대 국회 무능의 상징’이라며 ‘국회사무처는 전시회와 관련된 모든 이들, 그리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바라는 모든 우리 시민들 앞에 공식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1대 국회 남은 임기 동안 국가보안법 폐지해야"
이어진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2004년 무산된 국가보안법 폐지 실패를 거론하며 21대 국회가 6개월여 남은 지금이라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2004년,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과반을 달성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입법 과제로 내걸었다. 그러나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물론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폐지 찬반이 엇갈리면서 무산됐다. 이후 민주당이 2020년 총선에서 압승하자 다시 국보법 폐지가 수면 위로 올랐지만, 이인영 통일부장관이 “경제 비상시국에서 국민 생업과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폐지론을 일축해 논의되지 않았다.
내년 총선이 4개월여 남았지만, 21대 국회 임기는 5월 29일까지다. 총선 이후 5월에 임시국회가 열리고 그 전까지 민주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강행해 상임위와 법사위를 통과시킨다면 가능성이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조영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은 “180석을 만들어준 국민의 여망을 담아서 마지막 5월 임시국회에서 7조 폐지라도 이루길 바란다”며 “만약 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때 대응할 방법을 함께 모색하자”고 강조했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도 “전시회가 저렇게 된 줄 모르고 왔는데, 공동주최자로서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 이 상황 때문에 정말 국보법 폐지에 더 앞장서야겠다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다진다”고 소회를 남겼다.
주최 측은 오늘 전시되지 못한 작품을 포함해 12월 13일부터 31일까지 대학로 아트노이드(한성대역 3번 출구)에서 전시회를 이어간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