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전환기' 읽기] 북한경제의 실태와 잠재력 (4)

유영구 북한연구자

북한경제의 잠재력 ① 40~50대 경제 관료들

   북한 실물경제의 이해는 경제적 잠재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경제적 잠재력은 북한경제의 미래예측과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에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외부에서 주목하지 않은 잠재력의 하나는, 경제를 이끌어가는 40~50대 경제 관료들의 실력이다.

   지난 1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2차 회의에서 새로 임명된 부총리 6명과 상(장급) 17명은 우리에게 낯선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국영기업소 지배인, 지방경제 단위의 책임자, 혹은 내각 성‧중앙기관의 국장 등으로 복무하면서 계획경제와 경제관리 개선 속에서 단련된 인물들로 추정된다. 이들은 20~30대의 나이에 '고난의 행군'을 거쳤고, 국가경제가 위난에 빠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생생하게 목도했다는 공동체험을 갖고 있다. 

   이들은 엄밀하게 말해 북한의 권력집단이라 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권력집단은 당‧국가‧군대의 최고위직에서 은퇴할 때까지 머물 수 있었던 전통적인 권력구조에 찾아볼 수 있다. 김정은 집권기의 인사(人事)는 권력집단의 기반을 흔드는 것이었고, 실리주의적 측면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부총리로 임명된 6명 중에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된 인물은 3명(박정근, 양승호, 전현철)인데 이들에게는 권력이 생소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는 북한 경제를 살려내야 하는 임무가 부여되어 있고,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다른 경제 관료들로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다. 

   산업현장의 경험이 풍부한 40~50대 경제 관료의 폭은 상당히 넓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요 국영기업소 지배인들이라면 내각에 진입해 국가를 위해 일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북한은 중요한 당‧정 회의를 확대회의로 진행하며 중요 국영기업소 지배인들을 방청으로 참석시키는 관행이 있는데 이것은 경제 관료의 준비코스의 일환이라는 측면도 있다.

   내각 상들이나 위원장들이 물러나 다시 국영기업소 지배인에 임명되기도 하며 이들의 '재기'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박봉주 전 총리의 사례를 보면, 그는 내각총리 임명 전에 내각 화학공업상이었는데 그 전에는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 당위원회 책임비서였다. 

   총리에서 물러나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내려갔다가 당중앙위원회 경공업부장을 거쳐 다시 총리에 임명되어 일하다가 은퇴했다). 한편 인민경제대학 등에서 경제 관료들에 대한 재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함에 따라 이들의 실력이 향상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210402당중앙상무위원
▲북한 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2월 11일
당 중앙위원회 제8기 2차 전원회의 결정서를 채택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가운데) 국무위원장이 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로동신문

북한경제의 잠재력 ② 과학기술발전에 의한 자력갱생 

   둘째로, '과학기술발전에 의거한 자력갱생'이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산업현장에서 실제로 이행된다는 점이다. 북한에서 산학연(産學硏) 협력에 의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지향은 현실이 되고 있다. 

   국방공업에서 핵무기(소형경량화‧규격화‧전술무기화)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5),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초대형방사포, 극초음속미사일, 초대형수소탄 등 최첨단 전략무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제2경제위원회(군수산업 전담 국가기관) 산하의 국방과학원이 앞장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방과학원 '단독으로' 최첨단 전략무기를 개발‧생산한 것으로 보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치다. 그 개발과정에 국방과학원에 소속된 과학자‧기술자들 뿐 아니라 민간 과학자‧기술자들의 지원과 협력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

   북한의 국가과학기술시스템에서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사업이라면 어느 대학이나 연구기관‧기업체에 소속된 인적 자원이라도 동원할 수 있다.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올해의 과업으로 △부문별‧지역별‧단위별로 과학기술 인재를 100% 장악할 것(산학연 협력을 위한 조치) △과학자‧기술자들의 수준을 높여주기 위한 실용적인 조치들을 취할 것(과학자‧기술자들의 실습 및 재교육 조치) △대학에서 정보기술, 생물공학(생명공학), 화학, 재료 부문의 전문가를 비롯한 과학기술인재를 더 많이 양성할 것 등을 제시한 것은 과학기술발전에 의거한 자력갱생과 관련하여 유의미한 대목이다.

   북한이 소프트웨어(북한에서는 '프로그램'이라 한다) 개발능력의 면에서 세계적 수준이라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시대의 모든 산업에서 기계설비들의 성능은 소프트웨어에 달려 있다.

   북한의 소프트웨어 능력이 산업 전반에 영향을 주기까지는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이지만, 국가정책에 의해 소프트웨어 전문 인력들을 계속 양성한다는 것은 주목해야 한다. 지금은 북한이 정보기술(IT)를 넘어 생명공학, 화학‧재료부문의 전문 인력들의 양성에 집중할 태세다. 

북한경제의 잠재력 ③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와의 전쟁 

   셋째로, 북한 정부는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개인들의 관료주의와 부정부패 행위, 기관들의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 행위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투쟁하겠다고 선포한 바 있는데 이 움직임이 경제활동에 미칠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어느 나라에서나 관료주의와 부정부패는 사회의 건강성과 경제성장을 좀먹는다. 올해는 특히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에 대한 전쟁을 본격적으로 치르겠다는 것이 북한 지도부의 생각이다.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는 북한이 만든 정치 조어(造語)인데, 앞의 것은 일부 권력기관들이 '특수'한 지위를 이용해 국부(國富)를 사유화하는 현상을, 뒤의 것은 국가적‧전사회적 이익을 백안시하고 자기의 기관‧단체‧기업소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잘못된 관행을 말한다. 

   이러한 투쟁이 경제 정상화의 성과로 이어질지는 현재로선 분명하지 않지만 '경제사령부'인 내각이 '경제조직자'로서 경제 전반을 관리하는 조직문화가 자리 잡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일하는 내각, 성과를 내는 내각이 되도록 당 지도부에서 밀어주는 분위기가 확연한데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에 대한 전쟁은 이에 유리한 영향을 줄 것이다. 이 과정은 산업구조 조정이나 경제관리 개선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한경제의 잠재력 ④ 국방공업 능력의 민수 전환 

   넷째, 북한은 국방공업의 능력을 민간경제의 발전에 활용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군수부문과 민간경제 부문의 상관성은 여러 형태로 결합되어 있다. 즉 △국방공업의 침단기술을 민간경제 국영기업소에 이전하는 것(예: 스핀오프spin-off에 의한 CNC 제작) △국방공업 부문의 공장들에서 협동품(부속품, 기계류 중간재 등)을 생산해 민간 공장‧기업소에 공급하는 것(逆 협동품 공급 체인) △군수품 생산 공장들을 군수-민수 병진공장으로 개조하거나 민수공장으로 전환하는 것 △군수경제단위(후방용품 생산업체)에서 생활필수품을 생산해 국영상업망에 공급하는 것 △군에 소속된 농장‧수산사업소에서 생산된 식량‧축산물‧수산물 등을 민간에 공급하는 것 △지금까지 가장 광범위하게 진행되어왔듯이 대규모 국가건설대상(인프라스트럭처)을 비롯한 각종 건설부문에 인민군 건설여단을 집중 투입하는 것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밖에 군대가 보유하던 각종 유휴 부지를 민간의 산업부지로 전환하는 것도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함경북도 경성군 중평리의 비행장구획(차광수비행군관학교 실습비행장)에 중평남새온실공장과 양묘장을 대규모로 건설한 바 있다. 이런 사례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국방공업의 능력을 민간경제의 발전에 활용하겠다는 구상은 국방공업에서 생산해온 병기체계의 변화에 따라 기존 무기 중에 더 이상 생산하지 않아도 되는, 또는 앞으로는 점차 줄여나가야 되는 군수공장이 많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김정일시대에 시작된 첨단무기 개발사업이 김정은시대에 들어와 상용화 단계에 들어섬에 따라 병기체계가 전반적으로 수정되고 있다. 그 수정은 불가피하게 산업구조 조정을 수반할 것이다. 

   항공 및 반항공군(우리의 공군에 해당) 사령관 출신으로, 첨단병기체계와 전략무기의 개발에 공을 세우고 군수공업부장을 역임한 이병철이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어 김정은 위원장을 보좌하는 것에서 보나, 제8차 당대회에서 '국가방위력'을 강조한 것, 당대회에서 개정된 당규약에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한다"는 대목을 포함시킨 것 등은 북한 국방력의 성격이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방공업과 후방공업의 민수 전환은 점점 늘어날 것이고, 그 실상이 조금씩 드러날 것이다. 북한이 군수산업의 '소비적 성격'을 넘어서서 '생산적 성격'으로 이행하는 데 얼마나 성공할지는 예의주시할 대목이다.

북한경제의 잠재력 ⑤ 생산력 재배치와 경제관리 시스템의 개선 

   다섯째, 생산력의 합리적 재배치와 경제관리 시스템의 개선이다. 생산력 재배치에서 핵심은 산업구조의 조정과 지역별 재배치이다. 북한의 산업단지는 전쟁이 재발될 경우를 대비해 부문별‧지역별로 배치를 분산시켜놓았고 그에 따른 경제적 비합리성을 알면서도 손대지 못했다. 

   북한 전역의 산업단지들이 군수공업을 지원하도록 배치되어 있는 것은 물류 측면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군수공장들은 물론이고 군수‧민수 병진공장들도 '지하'시설로 인해 전력 과다사용뿐 아니라 습도‧제진장치들의 잦은 고장 등의 여러 문제를 일으켜왔다. 

   도로‧철도 사정은 좋지 않은데 중앙경공업공장(전문생산업체) 몇 곳이 전국적으로 방직, 의류, 신발, 가방, 학용품 등을 공급해온 현실을 보면 각종 경공업제품의 생산지와 소비지를 밀착시키는 과제도 중요하다.

   생산력의 합리적 재배치는 산업단지를 전면적으로 조정하려는 거대 기획이고 5개년계획 기간에 단기적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5개년계획에서 생산력 배치의 성과를 일부라도 거둘 수 있으면 다음 5개년계획에서 이 핵심과제는 이어질 것이다. 

   경제관리 시스템의 개선은 그 성과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경제관리 개선 없이는 5개년계획의 실행이 어렵다는 것이 북한 정부의 인식이다. 계획의 첫해부터 이 부문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우리식 경제관리방법과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전면 실행 등의 개선 방향에서 '우리식'의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될 것인지는 북한 안팎에서의 관심사항이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공장‧기업소‧협동단체들이 실제적인 경영권을 가지고 기업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한 기업관리방법이다. 즉 기업체에 생산권, 이윤 사용 및 임금 결정 등의 분배권, 무역권 등을 부여함으로써 경영자율권의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이 제도 하에서도 생산수단의 사회주의적 소유는 변함없이 유지되며, 근로자들로 하여금 생산‧관리에서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게 하려고 한다. 

   기업체의 경영자율권의 범위가 확대되면 근로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적용할 가능성이 커진다. 현형 《기업소법》에 따르면 기업체들은 계획, 생산조직, 관리기구와 노동력 조절, 제품개발, 품질관리, 인재관리, 무역과 합영‧합작, 재정관리, 가격제정 및 판매 등의 권한을 갖고 있다. 기업체의 경영권을 확대하기 위해 《기업소법》이 앞으로도 수정 보충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더하여 모든 생산단위에서 원가‧가격‧수익성 등의 경제적 공간(槓杆)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중시하고 있다. 기업체들에서 기업전략‧경영전략에 의거한 경영활동을 전개하는 것도 강조되고 있다. 올해부터 계획화 사업을 개선하고 재정‧금융‧가격 등 경제적 공간들을 이용하는 것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차원의 경제관리 개선방안들이 동시에 실행되고 있으며, 이것은 잠재력을 실제 경제성장으로 불타오르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밖에 북한의 지하자원은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한 잠재력이다. 북한에는 무연탄처럼 전력‧화학공업에 영향을 주는 석탄자원, 철광석처럼 금속공업의 자력갱생에 영향을 주는 광물자원이 풍부하다. 그 뿐 아니라 미래가치가 상당한 희토류 등의 다양한 자원이 산업발전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북한의 경제적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이 잠재력이 경제성장과 발전에 즉각 영향을 줄 것으로 속단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북한이 처한 상황은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해 우선순위를 잘 정할 것을 요구한다. 

   국가적인 '비상설경제발전위원회'를 설치하고 운영에 들어간 것을 보면 전략적 노선은 정해져 있지만 경제발전의 세부 방향과 방안, 개발의 우선순위를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에 착수하면서 '경제발전'을 다루는 비상설위원회를 설치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북한은 이번 5개년계획에서 정비계획‧보강계획에 집중하고 이것이 잘 매듭지어지면 다음 5개년계획에서는 '경제발전'에 나서겠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정비계획‧보강계획은 객관적 사정이 어렵더라도 자력갱생의 힘으로 경제성장과 인민생활 향상에서 일정한 성공을 거두겠다는 의사 표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