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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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5월 26일. 대동강 유람선 일주를 마치고 초대소에서 헤어지는 장면, 이날은 아침 9시 30분부터 오후 1시 25분까지 무려 4시간 동안의 만남이 진행됐다. 그러나 이후 김일성 주석은 한달이 지난 7월 4일 운명했기에 마지막 회동이 되고 말았다. [사진 : 책중에서]

   코로나방역으로 움직임이 적은 초가을에 손에 잡은 한 권의 책.
   내가 만난 김성주-김일성이란 책이다.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낸 손정도 목사의 아들인 손원태 박사의 회고록이다. 그는 유년시절을 만주 길림에서 김일성 주석과 함께하기도 했다. 
   1991년 5월 손원태 박사는 다시 평양에서 김일석 주석을 상봉하게 된다. 이 책은 김일성 주석과의 유년시절과 6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사연과 감격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을 통해 김일성 주석의 또 다른 인간적 면모를 살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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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시절 [사진 : 책중에서]

   학생 김성주와 인연
   손원태 박사와 김일성 주석의 인연은 부친 손정도 목사에서 비롯된다.
   손정도 목사는 유관순 열사가 이화학당을 다닐 당시 정동제일교회 제4대 담임목사이자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던 선각자였다. 손정도 목사는 목회 연설로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젊은이들의 가슴을 독립만세로 불러일으켰으며 일제의 탄압으로 가족과 함께 망명길에 올라 만주 길림에서 조선인 교회를 세우고 활동하게 되었다. 손정도 목사는 학생 김성주의 아버지이자 숭실중학교 후배인 김형직 선생과 함께 독립을 모색한 사이였고, 신채호, 안창호 선생들과도 가까운 사이였다. 김형직 선생 사후 손정도 목사는 학생 김성주를 친아들처럼 돌봐 주었다. 아랫벌 손원태 박사는 당시 김성주(어릴 적 김일성 주석의 본명)를 친형처럼 따랐고, 학생 김성주 역시 손정도 목사의 형제자매들과 형제처럼 지냈다. 학생 김성주가 반일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혔을 때, 손정도 목사가 다방면으로 노력하여 구사일생으로 풀려나왔다. 김일성 주석을 이 일로 손정도 목사를 평생의 은인으로 기억하고 그 자녀들을 그리워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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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도 목사 [사진 : 책중에서]

   학생 시절 김성주의 인간적 면모와 활동
   손원태 박사는 비교적 자세하게 만주길림에서의 유년시절과 학생시절 김일성 주석과의 인연을 소개한다. 손원태 박사는 학생 김성주를 총명하고 애국적이며 인정많고 보조개를 지닌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소년단, 학우회 활동 등 학생 김성주의 활동들은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나오지 않은 여러 장면들이 나온다. 그리고 손원태 박사가 상해 유학시절 접했던 <대공보>라는 신문을 통해 접해 본 김일성 주석의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소개도 잘 나와 있다.

   사실 이 책은 우여곡절 속에 출판되었다. 1996년 12월 회고록 원고가 끝났으나 한국에서 출판할 수가 없었다. 결국 2003년 3월 미국 McFarland 출판사에서 영문판이 먼저 나오고, 2020년이 되어서야 한글판이 나오게 되었다. 손원태 박사는 이미 2004년 작고하여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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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무장유격대를 이끌던 김성주(맨왼쪽), 그 옆은 중국인 계청이며, 그 옆은 최현과 안길이다. 계청은 그 후 시세영과 함께 일본군 간첩으로 오해받아 1944년 9월 소련군 내무부에 체포되어 1955년까지 풀려나지 못했다.[사진 : 책중에서]

   손원태 박사의 가족
   손원태 박사의 집안은 분단사를 그대로 반영한다.
   아버지 손정도 목사는 반일운동일선에서 헌신한다가 결국 1931년 길림 동양병원에서 의문을 남긴 채 타계하였다. 이후 형 손원일은 항해학을 공부한 후 대한민국 해군을 창설하고 초대 제독이 되었다. 물론 손원일 제독은 박정희 정권에 협력하지 않았다. 손원태는 연희전문에서 수학하여 의사가 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에 정착하여 한일제일연합감리교회 직원회장, 오마하한일장로교회 장로로 봉직하며 유학생들을 돌보는 활동에 기여하였다. 한 가정에 투영된 분단사를 되짚어 보는 것도 회고록의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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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 맥전 나루터에서 출발한 유람선을 타고 강줄기를 따라가는 동안 선상 응접실에서 간식을 들며 담소를 나누는 송원태 박사와 김일성 주석 일행 [사진 : 책중에서]

   김일성 주석과의 재회
   손원태 박사가 60여년 만에 김일성 주석과 재회하여 평양에서 추억의 길을 더듬는 과정은 추억을 넘어 주석으로서의 김일성과 현재의 북의 모습을 살려볼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유년시절 학생 김성주가 손원태와 누이동생 손인실을 데리고 다니며 사주던 ‘장즈쿼즈’의 맛을 맛을 회상하는 장면과 그것을 주석이 주방장을 시켜 다시 해 먹이는 장면에서 독자들도 세월을 뛰어넘어 저절로 감회가 새로워진다.
   손원태 박사가 다시 찾아간 고국은 김일성 주석을 닮은 아름답고 깨끗하고 도덕적이며 고상한 조국으로 묘사하고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에게 친우로써 격의없이 다가간 손원태 박사에게는 지도자의 성품에 따라 한 나라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더 뚜렷하게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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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열린 손원태 박사 팔순 연회 장면. 국상 중임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 목란관에서 고위 당정 간부들과 해외 손님들을 초청해 손원태 박사의 팔순 잔치를 성대하게 배풀어 주었다. [사진 : 책중에서]

   손원태 박사는 김주석의 권유로 영구귀국을 추진했으나 아쉽게도 김일성 주석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1994년 서거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을 대신하여 1994년 8월 국상중임에도 손원태 박사의 팔순생일 연회를 마련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을만한 이야기이다.
   손원태 박사는 스스로 말하기를 어린 시절의 벗 김일성 주석이 만고풍상을 겪으며 인민과 함께 세운 자주의 나라에 2004년 영원히 묻혔다.

   이 가을에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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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김성주-김일성 손원태 회고록손원태 저,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 편, 최재영 감수, 동연출판사, 정가 17,000원, 2020년 03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