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18~20일 평양 상봉과 회담서 역대 최고에 이른 우리민족끼리
김동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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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남북 종전선언이라 할 만한 불가침합의”, “비핵화 관련 남북 첫 합의”, “남쪽 대통령의 첫 북녘동포 대상 연설”, “남북 정상의 첫 백두산 동행 등반”

  유달리 ‘첫’이란 수식어가 많았던 18~20일 남북 정상의 평양 상봉과 회담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 정착과 비핵화에 큰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물론 생떼와 억지로 평가절하에 핏대를 세우는 일부 수구보수세력을 제외한 얘기다.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정도가 이번 평양 상봉과 회담 결과를 긍정 평가한 여론조사도 나왔다.

  평양 상봉과 회담에서 이처럼 전례 없는 성과가 가능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우리민족끼리: 대내 ‘대단결’, 대외 ‘자주’

  거두절미하면 6.15공동선언에서 천명돼 평양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남북 정상간 합의에 그 정신이 면면이 이어져 온 ‘우리민족끼리’가 분출한 힘이라고 하겠다.

  ‘우리민족끼리’란 한마디로 남과 북, 해외 동포들이 힘을 합치고, 결정하자는 것이다. 민족의 현안이자 숙원인 남북관계 발전과 통일 실현에서 대내적으로는 남북, 해외의 동포들이 대단결해 힘과 뜻을 하나로 모으자는 정신이고, 대외적으로는 이런 우리민족의 운명 문제들을 푸는 데서 외세의 지배나 간섭 없이 스스로 결정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우리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의 대원칙인 7.4남북공동성명에 명시된 ‘대단결’과 ‘자주’, 즉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실현할 기본 정신과 원칙의 다른 표현이다. 지난 2000년 분단 반세기여 만에 처음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15공동선언의 첫째항에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고 천명해 자주와 대단결의 기본 정신과 원칙을 재확인했다.

  이렇게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 통일의 기본 정신과 원칙으로 제시된 ‘우리민족끼리’는 두 차례 판문점을 거친 뒤 이윽고 평양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평양선언이 4.27판문점선언을 이행할 실행조치를 담은만큼 구체성과 실천력 측면에서 ‘우리민족끼리’의 실현 수준이 역대 최고치라 할만하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도 19일 평양공동선언 발표 회견에서 “지난 봄 한반도에는 평화와 번영의 씨앗이 뿌려졌다”면서 “오늘 가을의 평양에서 평화와 번영의 열매가 열리고 있다”고 자평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자주의 원칙을 다시금 확인하고, 첫 출발을 잘 뗀 북남관계를 시대와 민심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한 단계 도약시켜 전면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에 대해 의논했다”고 알렸다.

  민족자주와 대단결 원칙, 우리민족끼리가 실제 평양 상봉과 회담에서 어떻게 구현됐는지는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우리민족끼리는 평양 상봉 직전부터 눈에 띄었다. 조짐이 두드러졌다.

평양상봉 직전부터 두드러진 우리민족끼리

  먼저 지난 6일 남북 정부가 공동으로 유엔(UN)에 판문점선언 영문본을 회람용으로 제출하면서 “종전선언을 올해 안에 하기로 했다”고 명시한 것이다. 종전선언은 판문점선언의 3-③항에 언급됐는데 문장이 복문이고 쉼표도 없어 여러 해석의 여지를 남겼던 게 사실. 문재인 정부도 판문점선언 직후 외신기자들에게 배포한 영문 해설자료에선 ‘연내 종전선언’을 명시하지 않았다. 북은 당시 조선중앙통신 영문본에서 ‘연내 종전선언’으로 표기했다. 그러다가 유엔에 남북 공동의 판문점선언 회람용 영문본을 제출하면서 ‘연내 종전선언’으로 견해 일치를 본 것이다. 이번 평양 회담 과정과 귀국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거듭 “연내 종전선언”을 공언한 배경이기도 하다.

  지난 14일 열린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9월 평양 정상회담 일정을 구체화하려는 정의용 특사의 방북을 앞둔 시점에 미국에선 특히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를 두고 언론은 물론, 정부와 의회까지 대북 제재 위반을 운운하며 불만의 목소리들을 높였다. 문재인 정부에게 압력으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약속대로 평양 상봉 직전에 문을 열었다. 명분도 부족한 미국의 간섭을 우리민족끼리를 앞세워 극복해낸 것이다.

  이제 평양공동선언을 보자. 바로 알 수 있듯 핵심 내용은 우리민족끼리에 서지 않으면 합의할 수 없는 것들이다. 남북간 종전선언이라 평가받는 평양선언 제1항 ‘비무장지대 등 대치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해소)’은 유엔군사령부(주한미군사령부)가 대북 적대행위를 중단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유엔군사령부가 휴전선 이남 비무장지대의 지휘통제권을 갖고 있어서다. 단적인 예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근무병력의 비무장화도 유엔사의 ‘결단’ 없인 불가능하다. 경비대대장이 미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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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로동신문 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유엔사를 ‘을’의 자리에 세우다

  비무장지대뿐 아니라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동서해상과 공중에서의 완충지대 설정도 모두 주한미군(유엔사)과 연관돼 있다. 예의 이른바 ‘공고한’ 한미동맹의 관점에서라면 엄두도 낼 수 없는 발상이 이번 평양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것이다. 우리민족끼리의 관점에서 군사적 대치와 적대 해소 방도를 고민한 결과라고 하겠다. 주한미군(유엔사)와 사전 협의가 있었으리라 짐작되는데 결과적으론 주한미군이 남북의 합의, 결정을 수용해야 하는 ‘을’의 처지에 놓이게 된 셈이다. 그렇다 해도 “유엔사가 해체된다”는 수구보수세력의 비명은 어이없는 ‘침소봉대’일 뿐이다.

  서해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 시범 설정, 그리고 이를 위한 남북공동순찰대도 그렇다. 군사적 적대 해소는 물론, 남북이 합친 힘(공동순찰대)으로 불법 중국어선들을 통제, 서해어장 보호라는 공동이익을 실현하려는 구상이다. 우리민족끼리에 입각하지 않았다면 어려운 발상이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일상적으로 민간분야 교류협력을 위한 소통을 담당하게 되듯 앞으로 군사분야 협력은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통해 이뤄지게 된다. 비무장지대 등 군사적 적대관계 해소 과정에서 유엔사를 ‘을’의 위치에 놓았듯 군사공동위가 우리민족끼리의 발상과 기획을 이어갈지 주목된다.

  평양공동선언 2항의 ‘교류 협력 증대’와 ‘균형적 민족경제 발전을 위한 실질 대책들’도 마찬가지다. 올해 안에 동서해선 철도와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기로 하고 ‘조건이 마련’되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정상화하겠다고 하자 미국에선 예의 ‘대북 제재 약화’ 호들갑이다. 관영 VOA는 20일(현지시각) <제재 전문가들 “평양공동선언, 제재 위반 가능성 내포”> 기사에서 “제재를 위반하지 않고 남북 협력사업을 시작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까지 보도했다. 미국쪽에서 평양공동선언에 명시된 경제협력 사업에 대해 제재 위반 운운하며 문제 삼는 것은 되레 이들 경제협력 구상에 담긴 우리민족끼리를 반증해준다 하겠다.

우리민족끼리, 평양선언 ‘비핵화 합의’서 절정

  사실 평양공동선언에 담긴 우리민족끼리는 5항 ‘핵무기와 핵위협 없는 한반도’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 항목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전문가들도 ‘첫’ 구체 합의라는 데 방점을 찍는데 의미를 좀 더 깊게 새길 필요가 있다.

  물론 북의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발사대에 대한 외부 참관과 영구 폐기 ▲미국의 상응조치시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입장 표명은 특기할 만하다. 문 대통령이 “경의”를 표한 대로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이에 관한 이해와 평가가 여기서 멈추는 건 곤란하다. 이들 사항은 선언문에 나와 있듯 남과 북이 “인식을 같이”한 합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판문점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던 남북은 이번 합의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긴밀히 협력해나가”는 데도 뜻을 같이했다.

  그동안 북이 핵문제에 관해선 미국과만 협상해 운신 폭이 극히 좁았던 남쪽 정부로선 비핵화 문제에서 상당한 위상과 역할을 확보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더 주목할 점은 이런 변화가 낳은 결과다. 평양선언이 공식 합의문인 만큼 남북의 공통된 입장이 된 셈이다. 북만의 일방적 이행사항일 수 없다. 게다가 ‘완전한 비핵화 추진과정에서 긴밀 협력’키로 했다. 이번 합의에 기반한 ‘비핵화’ 진척에 남쪽 정부도 책임이 따른다는 얘기다.

  그래서 평양선언의 비핵화 합의는 남북, 아니 우리민족이 처음으로 뜻을 모은 한반도 비핵화 실행로드맵이자 그에 따른 대미 입장 표명이라고 보는 게 이번 선언의 기본 취지에 부합하는 분석이라고 하겠다.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에 대한 유관국 전문가 참관과 영구 폐기는 북이 공언한 만큼 또 추가되는 비핵화 선행조치일 것이다. 문제는 종전선언이 포함됐을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의 상응조치’이다. 이번 평양선언 이행을 위해, 그리고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공동성명 이행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 미국을 적극 설득해야 할 의제다. 25일 새벽(한국시각)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이 주목된다. 물론 김정은 위원장도 거듭된 ‘친서소통’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입장을 전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는 데서도 이제 우리민족끼리가 긴요해졌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평양공동선언의 비핵화 관련 합의가 공개되자 남쪽에선 “이제 미국이 북에 답해야 할 차례”라는 반응들이 많아졌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22일자 한겨레 기고에서 “갈 길이 멀고 때로는 천둥 번개가 쳐도, 이제는 남과 북이 잡은 손을 놓지 말자. 남북관계가 변하지 않으면 최소한 후진은 피할 수 있다”고 흔들림 없는 남북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 서울방문과 우리민족끼리의 높이

  문재인 대통령 설명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안에 서울을 찾는다면 우리민족끼리가 또 다른 높이에 도달한 모습을 보여주리라 예상된다. 분단이후 북의 최고지도자가 서울에 오는 건 역사상 처음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서울에서 열리는 것도 그렇다. 더욱이 문 대통령이 15만 평양시민들 앞에서 연설해 우레 같은 박수를 받은 뒤다. 물론 문 대통령의 연설 자체도 감동적이었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모두 10번에 걸쳐 ‘민족’을 강조했다. 특히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5천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라는 대목에 엄지를 치켜든 이들이 많다. 김 위원장이 서울에 오면 시민들을 대상으로 연설이 가능할까? 사람들은 문 대통령이 백두산에 올랐으니 김 위원장의 한라산행 얘기도 한다.

  사상 첫 서울 남북정상회담에서 어떤 의제가 논의될지는 현재로선 가늠키 어렵다. 서울회담에서도 판문점선언 이행방안을 논한다면 평양회담에서 주되게 다뤄지지 않은 분야가 주요 의제이지 않을까 점쳐본다. 판문점과 평양에서 한반도 평화와 번영, 그리고 비핵화가 주되게 논의된 만큼 서울에선 남북관계 발전, 특히는 통일 의제가 심도 있게 다뤄질지 지켜볼 일이다. 4.27판문점선언 시대에 ‘우리민족끼리’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