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결국 문제는 미국이다
          촛불민심은 ‘탈미자주’로 단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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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추가배치 강행이 불러온 파장이 만만치 않다. 지난 7일 사드 추가배치를 강행하는 과정에서 60여명이 실신하고, 앰블런스로 이송된 사람이 30여명에 달하며, 부상자가 70명에 이르렀다. 일단 사드배치를 완료하고 나면 잠잠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드 추가배치는 당일 몸을 내대어 싸운 사람들은 물론이고 촛불혁명에 참가했던 다수 국민들의 영혼에 상처를 남겼다. “이건 아닌데…”라는 의혹이 던져지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사건 때도 그랬다.

벌써부터 문재인 지지자와 동맹세력 내부에서 균열이 확산되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사회서비스망(SNS)에서는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서로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발언들도 꽤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등을 비롯해 내부에서부터 쓴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사드 추가반입은 충격적”이라고 말했을 때만 해도 국민들은 최순실, 록히드 마틴 등으로 이어지는 뿌리깊은 분단적폐 청산으로 진전될 것을 기대했다. 터무니 없는 한미동맹이라는 금기도 손댈 수 있겠구나 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사드 추가배치를 인정하는 것으로 첫 단추를 바꾸어 달면서 모든 것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사드 추가배치 다음은 무엇일까? 전술핵이다. 
사드도 처음에는 반대했다. 그러나 결국은 배치했다. 지금 전술핵을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끝까지 그럴지는 두고 볼 일이다. 자유한국당은 전술핵 배치를 당론으로 정하고 1천만 서명운동을 하겠다고 나섰고, 장외투쟁마저 거두어 들였다. 자유한국당과 야당들은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가 예리하게 통찰했듯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하이재킹 작전(보수 볼모화)’에 들어갔다.

지금 전술핵 배치 주장이 나온 것은, 당장은 대중국 압박용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중국이 한반도에 전술핵이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거나 그것이 싫으면 원유공급 중단 등 최고강도 대북압박에 동의하라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하는 것은 북의 핵무장이 합법화되고 한국, 일본의 핵무장을 불러와 핵 비확산체제의 와해로 이어지기 때문에 결코 선택할 수 없다는 지적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사드도 그렇게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전술핵 배치가 된다, 안 된다의 문제가 아니다. 이 논쟁을 둘러싼 정치군사구도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는가이다.

이후에는 필연적으로 전술핵 배치 주장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북미간 대결이 치열해지면 치열해질수록 이른바 “북의 도발”에 대해 뭐라도 해야한다는 논리로 전술핵 배치 주장들이 목소리를 더 높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지지층의 논쟁과 균열이 가열되고, 보수는 더욱 집결하게 된다. 아직은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견고한 지지는 흔들릴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폐족의 운명에 처한 분단적폐세력에 가했던 정치적 봉인이 풀릴 수 있다. 적폐세력이 귀환하도록 밑밥을 깔아주면서 적폐청산을 밀고 나간다는 것은 자가당착일 뿐이다. 좌우협공론이라며 그 누구를 탓하는 것도 더 먹히지 않을 것이다.

문제의 근원과 본질은 무엇인가. 결국 미국이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억압과 갈등의 근원에는 미국의 지배가 있다. 70년 이상을 남과 북이 으르렁 거리고, 영호남이 분열되고, 지금에 있어서 각계각층의 균열 역시 그 근본 원인을 따지고 보면 결국 미국이다. 민족 내부의 원한과 갈등은 우리가 원한 것도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니다.

해방 직후 친일분자를 비호하여 그들의 정권을 세우고, 혁명과 항쟁으로 일궈낸 민주주의를 5.16쿠데타, 광주학살, 친미수구보수 대연합정권을 통해 뒤집어 엎었던 전 과정의 배후에도 역시 미국이 있다. 자주없는 민주주의는 언제나 실패했다. IMF 외환위기를 더 큰 위기로 키워 오늘날 헬조선 사회로 만들어낸 배후에도 역시 미국이 있다. 당장 학교비정규직 교사의 정규직화와 교대생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뿌리 또한 따지고 들어가 보면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있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 역시 동북아에서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을 완성함으로써 미 본토의 방어력을 높이고, 중국, 러시아, 북에 대한 핵선제공격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미국 군사전략의 산물일 뿐이다. 그 위대하고 어마어마했던 촛불혁명을 등에 업고 등장한 문재인 정부를 아랑곳도 하지 않고 “한미 FTA 재협상”으로 협박하고, “거지 같다”고 함부로 대하면서, 상상할 수도 없는 압력을 넣어 민족대결의 돌격대로 몰아대는 것 역시 미국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지금 “문재인을 지켜야 한다”, 아니 “비판해야 한다” 하면서 우리끼리 아웅다웅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미국의 외압에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보수 지지자들조차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미국이다.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벗어날 준비를 해야 한다. ‘탈미자주’로 결집해야 할 힘을 다른 데 쏟지 말자. 미국을 보지 못하고 눈앞의 공권력만 보아서는 안 된다. 미국을 보지 않고 눈앞의 비판만 아파하면 안 된다. 촛불혁명을 완수하려면 미국에 저항하라. 문재인 정부를 지키고 싶으면 미국을 향한 촛불을 들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의 민심을 깊게 읽고 그 키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 그만큼 민족사적, 시대적 임무가 막중하다. 개별 정당들의 당리당략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탈미자주로 가야 한다. 
굳이 선언하라는 뜻이 아니다. 지금부터 행보를 그렇게 하고 전략을 수정해야한다는 뜻이다. 사드 추가배치에도 불구하고 애써 문재인 정부를 옹호하는 시민들이 ‘문재인 정부가 무언가 있을 거야’하고 기대하는 ‘그 무언가’는 바로 탈미 플랜 말고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문재인 정부는 ‘친미자주’의 길을 가고 있다. 가도 너무 많이 갔다.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으면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갔다. 문재인 대통령 특유의 성찰의 힘이 작용해야 할 시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탄핵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취임 초기, 인재부족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외교안보와 남북관계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는 힘들다. 북미대결에 대한 전망이 취약하고, 미국선택에 대한 개입전략에서 대담성이 떨어진다. 미국과 신뢰를 쌓으면 운전석을 내줄 것이며, 한국 정부의 말을 귀담아 들을 거라는 순진한 환상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된다’는 언급 정도는 지금 미국에게는 의미있는 마지노선이 아니다. 한발 더 들어가야 한다. 이미 미국 본토가 북의 타격대상에 들어가고 전역이 한반도를 넘어 아메리카 대륙을 포괄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선택과 결단에 골몰해야 하는 처지에 몰려있다. 한국 정부가 전쟁은 안 된다고 주장해도 미국이 전쟁을 선택하면 전쟁을 하는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미국은 한국의 역할을 대북압력의 도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북은 단기결전을 원하고, 미국은 장기화를 추구한다. 미국은 북미대결 장기화과정에서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한일의 군비강화를 통해서 군사적, 경제적 이익을 실현해 가려는 것이다. 대중국 무역전쟁을 강화하고, 동북아에서 기득권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친미자주 노선은 미국의 장기화 전략에 종속되는 길이며, 미국의 대북협상에 대한 선택과 결단만 늦춰주고, 오판만 강화시켜줄 뿐이다. 그렇게 되면 남북관계는 결코 풀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지속적인 코리아 패싱으로 이어지고, 무언가 개입력을 확보해야 하는 문재인 정부로서는 미국이 원하는 대로 대북제재의 첨병이 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 구조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국내 지지기반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당장 친미자주 기조를 탈미자주 기조로 바꾸어야 한다. 
친미자주 전략은 북미간 조기협상을 끌어내는 전략이 아니라 동북아 핵무기 경쟁을 심화시키고, 한미동맹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만약 전격적 북미협상 국면이 열려 무임승차하는 기회가 생긴다해도 한국의 위상은 땅에 떨어질 것이고, 한국과 민족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에 적극적인 참여가 어려워질 것이다. 다른 한편 북미간의 대결이 장기화되면 결국 전쟁위기만 고조되고 문재인 정부의 입지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때문에 친미자주 전략을 계속 밀고 나갈 아무런 이유가 없다.

사드 추가배치와 전술핵 논란으로 인해 벌어질 중국의 한국에 대한 역제재 역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금한령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이제 산출하기도 힘들 정도로 커지고 있다. 여행, 호텔, 면세점, 재래시장에 그치지 않고, 중국에 진출한 화장품, 대형마트, 자동차 등 그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에게 또 하나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군사적 조치까지 준비하고 있다. 북과 남 사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한국 정부는 어떠한 실마리도 찾지 못하고 있다. 탈미자주외교가 가시화될 때에만 중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또한 친미자주 기조는 대결적 남북체제경쟁 시각에 갇혀 있다는 약점이 있다. 70년대 닉슨이 데탕트를 추구하고,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며 아시아에서 손을 떼려할 때, 7.4남북공동성명이 있었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은 곧바로 이러한 남북간의 합의를 이행하기보다는 6.23선언을 통해 남북 체제경쟁을 택했다. 이것은 변형된 멸공전략에 불과한 것이었다.

경제적으로는 북에 비해 우위에 있으나, 핵으로 무장한 북에 밀리지 않기 위해 군비를 확장하고 방어력, 군사력을 높인다는 것은 일견 틀린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대북 적대적 한미동맹 아래서 진행되는 친미자주 국방전략일 때는 의미가 다르다. 결국 미국과 손잡고 북을 적으로 삼아 치겠다는 것이다. 국방부 장관이 “참수부대 창설” 운운하는 것이 그렇다. 군사적으로 여전히 북을 주적으로 하는 수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친미자주 외교전략의 필연적 결과이다. 6.15 민족공조의 시각은 실종되었다. 한국군을 한반도 평화군으로 개편한다든가 하는 탈미자주 전략에 기초한 국방전략이 없다. 오직 대북적대적 한미동맹만이 있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친미자주의 길에서 탈미자주의 길로 전환하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생각보다 너무 많이 왔고 뾰족한 방안을 찾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담한 전환이 시급하다. 일단은 너무 많이 나간 친미자주 기조에 브레이크부터 밟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탈미자주로의 대전환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길은 무엇인가. 주권자를 믿는 것뿐이다. 여전히 강력한 미국의 힘만 보지 말고, 무너져내리는 제국의 약점도 볼 줄 아는 시대적 혜안도 필요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주권을 가지고 당당히 살기 위해 인류사적 대사건이라고 하는 촛불혁명을 만들어낸 국민의 힘을 믿는 것이다. 거기에 기초하여 문재인 대통령의 최대 장점인 성찰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것은 정치공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철학의 문제이고 시대사적, 민족사적 사명의 문제이다.